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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숨겨진 업적

생각과 글

by mindle 2021. 8. 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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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수많은 업적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주목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초석인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이루는데 기반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김구 선생이 바라마지 않았던 문화대국의 기틀이 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대한 큰 역할과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세계평화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그의 탁월한 식견과 지도력은 세계 정치인들의 존경을 받았고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가 세계에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빌게이츠의 조언을 듣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출처:www.ehistory.go.kr

 

 

Kulture

 

디지털과 아날로그 교체기에 초고속 인터넷으로 승부를 걸다

첫번째 업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통한 민주정부 2기 탄생이다.

1997년 IMF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의 경제에 대한 자문을 구하게 된다. 먼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의 추천에 따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소개받는다. 그가 조언한 것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라는 의견이었고 대통령도 그에 공감하고 그 일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한국에는 전국에 케이블 인터넷과 초고속 인터넷 브랜드들이 여러 생겨 나면서 전국에 인터넷 붐이 일었다. PC방이 동네 구석구석 생겨났으며 가정집은 이제 모뎀으로 접속하는 느린 인터넷을 버리고 인터넷 속도 혁명을 경험하게 된다. 그 발전 속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전국으로 갖춰진 최 선진의 나라가 되었다.

 

 

2000년 초 보급된 초고속 인터넷은 여러 분야에 혁명을 불러왔다.     출처: KBS, 소비자가만드는신문

 

 

초고속 인터넷 기반으로 디지털 사회로 급속히 접어들 수 있었다. 장소의 제약을 넘어 개인의 취미나 요구에 따라 커뮤니티가 인터넷 공간에 형성되고 활발하게 성장하게 된다. PC통신 시절의 게시판에서 더욱 발전하여 웹 기반 커뮤니티 게시판이 다양하게 생겨났고 그로부터 여러 동호회와 조직들이 쉽게 온라인에서 모여 의견을 모으고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거리와 장소의 장벽을 부수고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의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던 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도구로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불었던 '아랍의 봄'은 스마트폰의 보급과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권위주의 정부에 민주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킨 디지털 사회에서 비롯된 민주시민의 힘을 행사했던 사건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10여년 앞선 1999년 국민PC 사업으로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었다. 그러한 PC에서 웹 기반의 커뮤니티 게시판이 활성화되었다. 그중에 민주정부 2기 탄생의 주역인 노사모가 있다. 이러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붐을 타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감동적인 신화가 탄생했다. 즉 김대중 대통령의 초고속 인터넷 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탄생의 싹을 키웠던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수상과 기자회견 중 일본문화개방을 발표하는 김대중 대통령 출처www.ehistory.go.kr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라

 

문화 자신감을 회복시킨 일본 대중문화 개방

두번째 업적은 대중문화 개방으로 한국문화 성장기반 마련이다.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다고 했을 때 언론과 시민들은 일본문화가 우리 문화를 잠식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경제 문화적으로 잘 나가고 있었고 우리는 식민 통치에 대한 기억에 다시 문화적으로 지배받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가졌고 오랜 기간 준비할 시간을 주었다. 이에 우리 문화 예술인들은 더욱 각성하고 노력하여 대비를 했다. 막상 개방이 되어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 문화에 우리가 잠식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승승장구하여 일본에 우리 문화를 수출하여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이러한 일본 문화 개방이 자극이 되었고 극복하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 문화를 개방해도 별거 없구나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아시아 문화 탑인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잠식의 두려움이 컸다

식민주의 교육을 받다가 '우리는 안돼. 아마 일본을 이길 수 없을 거야.' 이런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내면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더욱 현재 한국 문화가 전세계에 수출되고 각광받는 속에 그 자신감이 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음반 영화계 사전심의제도 폐지가 자유 창작으로 이어져 그 경쟁력이 상승한 것이 크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준 사건이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 개방이라고 본다.

 

문화 자신감으로 한류가 펼쳐졌다. 드라마에 겨울연가, 영화 쉬리, 정태춘의 사전심의패지. 출처:지니,제주의소리.다음영화

 

김대중 정부가 민주주의와 문화 발전의 기틀을 닦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 정치를 세계 정치에 등장하게 하고 민주화와 남북 평화의 개선 등 굵직 굵직한 업적이 많다. 하지만 일본 문화 개방에 의한 우리 문화력의 자신감 획득과 발전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승부수로 IT강국의 기반을 마련하고 민주 정부 2기 창출의 핵심인 노사모라고 하는 일련의 인터넷 커뮤니티 발전에 기여한 점은 숨겨져 있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온라인을 통해 영양분과 힘을 공급받고 그러한 민주적인 바탕 위에 자유로운 우리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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